장주지몽 (蔣周之夢)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느끼고 하는 것은 한낱 만물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의 인식을 통해 받아들이는 외부 세계는 완전하지 않다. 장자는 이런 점에서 인간의 한계적 인식을 넘어서는 것에 관해 자기 자신을 잊는 ‘상아(喪我)’를 강조하였고, 이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편견을 버려 마음을 깨끗이 하는 ‘심재(心齎)’를 제시하였다. 그는 자신이 나비가 된 자기의 꿈 혹은 나비가 자기가 된 나비의 꿈『호접몽(호접몽)』-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실재의 꿈과 꿈의 실재 사이에 하나의 완벽한 대상과 상동(相同)이 존재함을 가리킨다.-을 두고 경이로워했고 이것이 곧 물아일체(物我一體)이고 무아지경(無我之境)이며 flow (몰입)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정관념과 ‘이미 형성된 마음’ 즉 ‘성심(成心)에 비추어 인식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세계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며 차별적이고 분별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박경민의 작품 속에서 무수히 피어나는 것은 꽃이었던가? 그렇다. 원근의 차등도 명암의 차별도 없이 화면에 다투어 차오르는 담대한 너는 꽃이고 생명이다. 칼부림과 아노미의 몸짓이 반목하고 이어지는 너는 또한 전쟁이자 죽음이다. 내 안에 스미는 것이 만개하는 꽃의 아름다움인지 다투어 나타나는 처절한 몸짓인지 분별심 없이 너를 내 안에 담는다.


몰입 (Flow): 나와 너와의 거리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올라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로움을 체험한다.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 (Mihaly Csikszentmihalyi)에 따르면 몰입의 단계에서 시간 개념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 자신이 몰입하는 대상이 더 자세하고 뚜렷하게 보이고, 몰입 대상과 하나가 된 일체감을 가지며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진다고 한다. 몰입상태에서는 행위와 인식의 융합이 일어나고, 그 활동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관찰자적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몰입(flow)은 흥미(interest)를 전제로 한다. 흥미를 뜻하는 ‘interest’는 ‘사이(inter)’와 ‘있다(est)’가 결합한 단어이다. 즉, 거리가 있는 두 사물을 관련 짓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무언가를 흥미로워하면, ‘나’와 ‘그 무엇’ 사이의 거리는 짧아진다. 이는 ‘너와 나의 하나 됨’ 즉 완벽한 몰입의 순간이자 물아일체(物我一體) 현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박경민의 작품은 존재에 대한 차등 없는 자유로운 몰입이며, 물아일체요, 그로 인한 산출이다. 박경민 작품의 대상들은 각기 분절된 레이어가 아니다. 독립된 존재와 대상들은 작가의 경험과 구성으로 그 거리를 좁히고 그들은 유기적으로 얽히고 하나가 된다.


나의 기억 속에 잠재된 장면들은 지나다 흔히 마주치는 풍경과 한 화면 속에 어우러진다. 인간의 생활 속에 스며든 풍경은 삶의 감정에 따라 서로가 유기적으로 변하면서 나의 생각을 담는다. 나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표출된 대상 속에 스며든 풍경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박경민 작업 노트 중-

내 안에 스미다: 초월적 풍경

“‘나’와 ‘너’의 만남에는 갈등이 없다. 만물은 일체이며, 무차별 평등이며, 여기서 진정한 이해가 이루어진다.”

풍경화, 가경화(街景畫), 건축화(建築化) 등에 제2차적으로 첨가해서 그린 인물과 동물 등의 점경 혹은 첨경은 그로 인해 장면이 활기를 띠고 그 안길이(깊이)의 거리적 관계가 확실해진다. 그래서 산수화중에 나오는 인물 등의 점경은 상대적으로 자연의 광대함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

박경민의 작품은 어느 것이 풍경이고 어느 것이 점경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의 작품 속 인물과 도시와 건물, 산수와 꽃 사이에는 어떤 원근도 나레이션도 차등 비중 없이 화면에 열거된다. 작가의 내면에서 존재와 존재 사이의 거리를 단축하고 일체시켜 나열된 서사는 이제 차별 없이 보는 이의 시각으로, 내면으로 스며든다.

실재는 무한한 방법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이해를 발생시키는데 절대적으로 고정된 절차는 없다. 개별적 자유의 속성은 창조적 주체의 근원이다. 박경민은 실재와 비실재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 존재하는 편견에 치우친 관습적 특성을 버리고 ‘그것’이 아닌 ‘너’를 만나고 있다. 실재에서 자신의 상념을 제한시키지 않고 실재의 창조적 파악으로 옮아가 특정한 방법으로 이해된 실재를 특정한 방법으로 구성하여 현실을 구성한다.

저것과 이것이 똑같이 이해되고 똑같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양쪽이 모두 초월적(transcended)이어야 한다. 상호 귀속성은 동일하게 모든 관점에 대응하여 볼 수 없다. 박경민은 이것에나 저것에나 귀속되지 않는 특정의 관점을 포괄할 수 있는 무한 관점으로 사물의 본질과 삶을 풀어낸다.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박경민의 작품 안에서 ‘나’와 ‘너’는 그렇게 서로를 초월하여 만나고 있다.


갤러리마리 아트디렉터 차경림
목록보기 


HOME  /  SEARCH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 책임의한계와법적고지 | 검색결과수집거부
35, Gyeonghuigung-1 gil , Jongro - Gu , Seoul , Korea / TEL : +82-2-737-7600 / FAX : +82-2-725-3355
Copyright © 2016 Gallery Marie / E-mail : infogallerymarie@gmail.com
Supported by ONTO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