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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스테메를 대하는 어느 예술가의 자세
“ 나의 분야에 대해, 난 얼마나 미쳐 있는가
나의 광기는 앎의 열정인가? 열망의 이반인가? “
일찍이 플라톤에게 에피스테메는 이데아를 파악하는 개념적인 진정한 인식을 뜻하며,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필연적이고 영원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능력이었다. 근현대로 이어지며 푸코Michel Foucault는 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혹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기초를 에피스테메라 칭했다. 그는 렘브란트의 ⌜공부하는 미네르바⌟ 를 일컬어 예술이 할 수 있는 최상위 역할이며 앎의 최대 감정이라 지칭한 바, 한정된 공간에 무엇을 재현하고 어떻게 배열하며 조형과 구도 그 사이 셀 수 없이 파편적인 美적 시도에 따라 신격된 여신의 지혜가 발로 하기에 “예술가가 어떠한 광기를 품느냐에 따라 예술가의 창의력, 상상력 내지는 천재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셰익스피어의 햄릿,리어왕과 맥베스 그리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수반했던 대문호의 문학적 광기, 바흐를 깨부순 글랜굴드 Glenn Herbert Gould의 음악적 광기와 예술적 반란의 기저가 되었던 고흐의 광기 뿐 아니라 역사를 관통하며 인류문화사를 바꾸거나 획을 그었던 이른바 위대한 광기들에 대한 회자가 이를 증빙한다. 이로써 인간의 광기를 철저하게 논급하고 추적했던 푸코의 “문명의 야만을 벗어 던진 미친 짓이 없었다면 대체 무엇으로 이성의 주관적 다양성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라는 광의적 경지에 주목하게 된다.
오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모든 인식은 결국 나 자신의 진실에 다다름이며, 태고적부터 지금껏 끝없이 탐사되는 인간의 출발점 역시도 ‘선험적 에피스테메’에 귀착된다는 푸코의 인간 본질에 대한 끈질긴 광기 어린 탐사를 동시대 예술가 이돈아와 유한이 그리고 전수경를 이항에 놓고 해제解題 해본다.
세 번 째 눈으로 보는 광기
이들의 광기는 참된 앎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예술가의 범속한 현실 세계와의 피나는 투쟁이다. 화가는 그림으로서 밖에는 그 아무것도 말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투철한 ‘골똘한 생각’, 광적이기까지 한 ‘정신 집중’의 세계를 통해 그들은 에피스테메로 나아가기를 소원한다. 그들은 시바여신처럼 원래 보던 것과는 다른 것을 보거나 초월적인 능력 즉, 개안이라고 불리는 제 3의 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돈아의 책가도와 우주 속 달항아리 그리고 모란은 매체와 표현의 다양한 변주로 4차원의 우주공간을 의미하는 omniverse옴니버스에서 더 나아가 Omni_Verse의 표현으로 현실과 상상을 포함한 서사를 그리고자 한다. 그녀의 omniverse가 가지는 알레고리는 길상의 의미를 가지는 한국 전통 소재들을 물질적, 서사적으로 혼성시키는 데 있다. 작품 초기에 민화에 별자리나 선을 그려 넣으며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자신의 설명과 그럴싸한 미술계의 평가는 그 자신을 구차하고 주눅들게 만들었다. 괴로움과 나아감에로의 광기의 출발점은 여기서부터였다. 넘어질 듯 기울어져 있어도 쓰러지지 않고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육면체의 완벽함에 빠져 육면체와 기하 도형을 민화의 소재들과 조우시키며 질료와 매체를 확장시키고 켜켜이 서사의 레이어를 쌓아갔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현실계와 상상계, 전통의 조형과 서사를 현대의 물리적 매체와 서사에로의 변종이며 세 번 째 눈으로 들여다보는 그만의 omniverse이다.
유한이의 작업은 제도, 관습, 규율, 질서, 약속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의 틀을 차분하게 돌아보려는 노력으로 시작한다. 그는 이러한 시도를 성당, 사찰, 탑 등과 같은 종교적, 역사적, 사회적 기념물 등 신념의 상징물인 건축물로 풀어낸다. 건축구조물의 물리적 ∙ 심리적 근간과 틀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거나 회의하며 건축공학적 구축 원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해체, 재구성한다. 파사드에 대한 재현보다는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거나 측면 혹은 지붕을 걷어내고 위에서 내려다 본 건물의 알맹이와 기단 그리고 기단들의 레이어로 건축물을 다시 짓는다. 미로처럼 연결된 공간과 공간들에 대한 유한이의 해석은 한 마디로 추상성이며 그것은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건축물의 견고한 구축성을 화면 안에서의 새로운 구축주의로 이루어가는 그의 작업 과정 역시 광기 없이 쌓을 수 없다. 시간을 이겨내며 복잡하고 모호한 공간들을 이어 붙이며 새로운 건축물로 축조해낸 혼란스러움과 기대감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새로운 틈새의 미적 구축물이다.
한편 몸Body을 주제로 인간의 실존적 상황을 표현한 이른바 인체풍경을 탐구해 온 전수경은 인체 드로잉, 일상의 사물, 자연물 등으로부터 모아진 다양한 ‘몸’의 이미지를 이원성으로 결합된 실체로 구성한다. 정신과 물질,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음과 양 등 대립 항을 이루어 인식되고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를 더불어 내포하는 양극단은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하지만 필연적으로 갈망하고 갈등하며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전수경은 이러한 모든 것들의 관계와 작용을 ‘몸’이라는 상징적 도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이 무한히 재생산되는 연속성을 지향하며 모두에게 동등한 실존의 터전이며 외부세계와 만나는 첫 번째 지점인 몸에 대한 그의 광적 탐구는 몸이 역사를 관통하며 늘 새로운 의미와 형식을 담을 수 있는 유효한 키워드임을 나아가 이것이 에피스테메를 거쳐 일자에게 다가서는 길이라 믿기 때문이리라. 그의 신념으로 현상된 회화는 견고하게 이질적이고 아름답다.
이들 이돈아 ・유한이 ・전수경 작가의 제 3의 눈은 작품으로 현존하면서 화면 밖으로 나와 보는 이 마저도 해부당하는 느낌을 들게 한다. 광적인 집중으로 탄생시킨 새로운 세계는 생생한 세계처럼 다가온다. 화가의 천분을 넘어서 철학자의 천분으로 예술을 매개로 반란을 시도하며 광기의 불꽃을 일으킨다. 지극히 참된 진리와 앎을 지향하는 부단한 예술가의 자세로서 말이다.
낯선 서사에로의 광기
서사narrative가 전달되려면 ‘story이야기’와 ‘discourse담화’가 필요하다. ‘스토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라면 ‘담화’는 이야기의 형식이 된다. 스토리는 작가들이 재료로 사용하는 사건을 시간적• 인과적 순서에 따라 배열한 체계이고, 이것은 담화로 되어 가는 과정에서 다시 인위적•예술적 순서로 기술된다. V. Shklovski쉬클로프스키의 낮설게하기defamilliarization는 바로 보편적인 구조를 새로운 담화로 변환시키기 위한 방법적 측면의 하나로 즉, 지각의 과정 자체가 미적 목적이므로, 형식을 어렵게 함으로써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것이다. 예술의 목적은 단지 알려진 사물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되는 사물의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다. 예술의 기술 혹은 기교가 대상을 생소하게 하고 형태를 어렵게 만들고 지각의 난해성과 길이를 연장하는 이유이다. 예술은 대상의 예술성을 경험하는 방법이지 대상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돈아의 책가도와 우주 속 달항아리 그리고 모란과 단청은 매체와 표현의 다양한 변주로 보는 이를 낯설게 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 채색 질료는 물론이고 오일과 아크릴, 자개와 보석 그리고 랜티큘러와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기까지 질료의 한계 설정이 없다. 표현 역시 우주와 달항아리, 도시 풍경과 책가도, 단청과 큐브, 역동하는 모란, 미디어 파사드 등 모든 대상을 자신만의 담화로 풀어냈다. 그의 생소하고 이질적인 담화가 서사에 힘을 실어주며 작품에 새로운 빛을 더한다.
유한이는 건축공학적 구축 원리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해체, 재구성한다. 화면 속 건축물은 시공을 초월한, 국적을 알 수 없는 건축과 공간들로 새롭게 자리한다. 레고 블럭의 유닛들로 구축된 건물, 수 많은 기단들로 레이어된 건축물 혹은 지붕과 벽면을 걷어낸 유한이의 구조물이 익숙한 듯 낯선 건축이자 공간으로 보이는 것도 이때문일 것이다. 유한이의 건축물은 고정되지 않은 움직이는 건축이다.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그가 택한 서사의 방법 역시 낯설게 하기이다. 시대의 믿음과 기술과 미감이 총체된 건축물에서 그는 껍데기가 아닌 민낯같고 유령같은 낯선 건축물들을 구축하며 우리에게 새롭고 낯설게 서사한다.
전수경의 서사는 인간의 몸을 낯설게 하는 서사이다. 지퍼, 고리 등 개폐(開閉)의 기능을 하는 사물을 자웅동체와 같이 한 몸 안에 존재하는 남녀의 성징性徵으로 담화하는 뫼비우스 작품은 남녀관계 즉, 이원성의 결속이다. 사물과 인체의 결속 이를테면 소파와 누드가 하나의 사물로 콜라보레이션 되는 이 낯선 아름다움에 와서는 작가의 독특한 담화가 스토리를 찾아내고자 하고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그의 수묵 누드는 회화공간pictorial space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형상figure과 배경ground간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그리고 동등하게 대비시킴으로써 형상과 여백의 순차적 지각과 해독을 지연시킨다. 타나토스의 유한 운명을 생식과 보전으로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몸으로 치열하게 이원시키고 결속시키는 그의 서사는 금단의 무엇이 드러날 때처럼 생소하고 혼란스럽게 우리를 오래 지각안에 머물게 한다.
평론 | 차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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